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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천의 한국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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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야기
블로그"금성천의 한국전쟁사"에 대한 검색결과761건
  • [비공개] 그들은 어떤 세상을 지키려고 의병을 일으켰나?  

    의병 내부의 신분 갈등은 활동의 가장 강력한 장애 요소였다. 실전에서 무능력했던 양반 유생들이 신분을 내세워 조직 내에서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의병장 유인석이 양반인 안승우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충주..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04: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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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유교 탈레반들의 발악  

    1910년 7월 18일 오후 3시 의병 10여명이 총과 칼로 무장하고 안동의 협동학교를 습격하여 교감 김기수(32세)와 교사 안상덕(24세) 등 세 명을 살해했다. 학생들이 단발했다는 이유였다.보성전문학교 교사였던 김기수와 보성중학 ..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04: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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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혈세가 무섭긴 하구나!  

    일본에서는 1872년 사민평등의 징병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족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징병제에 저항했다.징병고유(徵兵告諭징병포고문)에서 병역을 ‘혈세(血稅)’라고 표현한 것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까지 겹쳤다...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01:1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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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기독교의 발흥 - 역병을 마주했을 때  

    역병은 이방 종교와 헬라 철학이 설명하고 위로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던 반면, 기독교는 왜 인류가 이런 끔찍한 시대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보다 만족스러운 해명을 제시했고 희망찬, 때로는 활력적인 미래상..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01:0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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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왜구(倭寇) 이전 신라구(新羅寇)의 활약  

    9세기에는 신라 해적들이 동해를 주름잡고 일본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신라 해적들은 812년 전후와 860년대에 일본 해안에 나타나 약탈을 일삼았다. 적게는 수십에서 수백 명의 무리가 바다를 건너왔..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01:0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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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주자의 제자 교육, 자식 교육  

    제자들이 주자(朱子)를 찾은 것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지, 그런 자신의 절박한 고뇌에 주자가 명확한 해답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생활..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12: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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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선조 임금의 자식들  

    선조 40년 3월 18일, 선조와 순빈 김씨 사이에서 난 순화군 이보가 죽었을 때 실록의 졸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성질이 패망하여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이나 정원군의 행패보다는 덜..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20-05-07 12:5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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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우리 백성들은 모질고 사나우며 간사하니.......  

    사무라이만도 못한 사대부들 당시 조선 정부는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동학농민군의 발을 전라도에 묶어 두려고 농민군이 주장하는 폐정개혁안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보이긴 했지만, 농민들의 요구를 실제로 수용할 생각은..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9-26 12: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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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장사리 상륙작전 이명흠 대위  

    (글의 앞부분이 이미지 혹은 HTML 태그만으로 되어있습니다)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9-23 12: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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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실상  

    독립운동사의 과대망상증 봉오동 전투에 관하여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발표한 “북간도에 재한 아 독립군의 전투정보”에는 일본군 사망자 157명, 중상자 200명, 경상자 100여명으로 나와 있다. 12월 25일자 4쪽, 고등학교 교과..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8-24 12: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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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병사에게 말고삐를 쥐게하고 정탐하는 군관  

    조선 양반들은 말을 탈 때 아랫사람에게 말고삐를 잡게 했다. 그러니 고속 운행 수단인 말을 타도 사람의 보행속도를 넘길 수가 없었다. 이일 장군은 한 군관에게 적진의 상황을 탐지하게 했다. 그런데 정탐을 맡은 군관은 병..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8-08 11: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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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년  

    두 얼굴의 조선사 -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 년, 조윤민조선은 도덕정치로 위장한 철저한 계급정치가 관철되는 ‘위선의 나라’였다. 지배층의 이익 확보와 욕망 추구를 이(理)와 도(道) 같은 사상 개념으로 포장해 정당..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8-06 03: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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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조선 관리들은 나라 망하는 순간까지도 백성들 뜯어먹었다  

    모든 조선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과 그의 가족들에게 줄 음식과 옷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일부러 부자가 ..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8-06 03: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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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일찌감치 자기들의 文字 '가나'를 만들어 쓴 일본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와 문자로 속박 없이 자유롭게 쓴 것,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보급하여 문맹률을 낮춘 것, 와카(和歌 일본 고유의 정형시)나 하이쿠(俳句 일본 고유의 단시)를 만들어 일본 고유의 감성을 기르도록 한 ..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9-05-09 01: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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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사무라이만도 못한 사대부들  

    1637년 가을 구주(九州)의 시미바라반도와 아마쿠사섬(天草島)에서 격렬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영주들의 가혹한 연공 착취에 견디다 못해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지방은 예로부터 천주교신앙이 깊이 뿌리박힌..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8-12-21 11: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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